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유령 전투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4월 28일 [[신립]]이 탄금대에서 참패하면서 왜군의 한양 진군을 저지할 수단이 사라졌다. 한양에 남은 군사는 4천 5백(실록)에서 7천(징비록)에 불과했다. 이마저도 정예들이 모두 [[신립]] 휘하로 차출되어 갔다 전사해 질적으로나 사기로보다 도저히 제대로 된 방어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. 이에 조정은 4월 30일 새벽 파천을 단행했고 도원수 [[김명원]]과 부원수 [[신각]], 유도대장 이양원을 남겨 한강 방어선을 담당케 했다. 왜군과 수적, 질적 차이가 너무 심하고 제대로 지휘권을 행사할 입장도 되지 못해[* 이양원은 전직 우의정인데 김명원은 이때까지 판서직을 역임한 게 다였으니 명령 계통이 제대로 발휘될 리가 없었다.] 방어가 어렵다 여긴 김명원은 군을 물리려 했는데 사기가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던 병사들은 지휘부가 퇴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마자 붕괴했다. 조정은 5월 3일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향하며 [[김명원]]에게 임진강에 방어선을 치고 적을 막게 했다. 하지만 임진강에 도착한 [[김명원]]은 자신과 합류해야할 부원수가 보이지 않음을 알아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